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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0 2015-04-16 오전 3:26:25

피규어에서 공방까지…한국의 ‘3D프린팅’ 개척자들

By 오원석On 2015.03.26

의왕시 계원예술대학교 디자인관. 연구실 한켠에 세 든 셰에라자드웍스에는 방음시설이 갖춰진 한평짜리 방이 있다. 방음실 밖 연구실 곳곳엔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흉상이 나란히 놓여있다. 멀리 바티칸에까지 전달됐다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고 김수환 추기경의 흉상도 제법 실제 모습과 흡사하다. 칠흑처럼 검은 털을 가진 손바닥만한 말 한 필도 연구실의 빼놓을 수 없는 장식품 중 하나다. ‘작품’. 3D프린팅 업체 셰에라자드가 그동안 실제 모델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그야말로 작품들이다.

‘3D프린터’라는 낱말은 이미 익숙하다. 종이에 글자를 인쇄하듯 플라스틱 소재로 물체를 뽑아내는 기술이라는 점도 잘 알려져 있다. 헌데, 3D프린터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보통 입을 닫는다. 누가 3D프린터로 어디에서 무엇을 왜 만들고 있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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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법.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퍼지면, 가장 먼저 나서서 기회를 엿보는 이들은 언제나 있다. 개척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가정집을 개조한 합정동 사무실부타 친구의 사무실 한켠을 빌린 작은 공장형 건물까지. 국내 3D프린팅 시장에서는 개척자들의 사업 구상이 한창 진행 중이다. 콘텐츠에서 공간까지, 3D프린터가 만들어갈 새로운 사업이 흥미롭다.

[기사 싣는 순서]

• 피규어에서 공방까지…한국의 ‘3D프린팅’ 개척자들

공간을 창조하는 3D프린팅 스타트업

3D 프린터로 피규어 뚝딱, 셰에라자드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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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셰에라자드웍스 대표(왼쪽)와 고인수 셰에라자드웍스 이사

셰에라자드웍스는 3D프린팅 기술로 콘텐츠 사업을 구상 중이다. 브랜드도 만들었다. 이름은 ‘S피규어’. 실제 사람이나 동물을 최대한 사실처럼 묘사해 피규어로 제작해주는 일이다. 사람이 손으로 주물러 만드는 기존 피규어 제작방식과 다르다. 3D프린터가 셰에라자드웍스의 핵심 키워드다. 김태형 셰에라자드웍스 대표는 3D프린팅 기술이 만드는 최종 결과물의 완성도를 자신했다.

“머리 하나 뽑는 데 한 10시간쯤 걸려요. 출력 끝나면 깔끔한 상태로 채색할 수 있도록 다듬고, 정교하게 색깔도 칠하고요.”

셰에라자드웍스에서 가장 먼저 내놓은 상품은 커플 피규어다. 주로 결혼을 약속한 이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할 생각이란다. 남성 피규어에는 턱시도를, 여성 피규어에는 웨딩드레스를 입힌다. 얼굴은 당연히 제품을 주문한 실제 커플의 얼굴이다. 핸드스캐너라고 불리는 3D 스캐너를 이용해 주문한 이들의 얼굴을 3D 데이터로 만들고, 셰에라자드웍스에서 3D프린터로 얼굴을 뽑는 방식이다.

셰에라자드웍스가 강조하는 점은 품질이다. 원래 3D프린터는 하드웨어 산업 분야에서 시제품을 만들기 전 제품의 디자인을 대강 실물로 보기 위한 용도로 많이 쓰였다. 모니터 속 3D 디자인을 실제로 만져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쓰임이었다. 품질은 그 다음 문제였다. 결과물 자체가 상품이 되는 사업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인형사가 만드는 기존 피규어보다 나은 품질을 보장해야 한다.

셰에라자드웍스에서 후가공을 강조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출력 과정에서 결과물의 속을 채우거나 제품이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서포트 재료를 제거하는 일, 결과물의 미세한 굴곡을 다음는 일, 실제 색깔과 가장 가까운 색을 입히는 일이 특히 중요하다. 3D프린터는 10시간 정도면 물체를 뚝딱 뽑아주지만, 그 다음 과정이 훨씬 더 오래걸린다.

프란치스코 교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박근혜 대통령
마치 털이 살아있는것처럼 채색하는 기술이 핵심

기계가 만드는 시간은 10시간이지만, 후가공 과정 덕분에 제작 기간은 긴 편이다. 여러 주문을 받을 경우를 대비해 셰에라자드웍스는 20~30일 정도 여유를 두고 작업을 한다.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주문제작 방식이라는 점에서 가격도 퍽 높은 편이다. 40cm 키의 커플 피규어 한 쌍은 280만원 선, 20~30cm 크기의 흉상은 80만원 정도다. 웨딩 피규어에는 피규어 의상 전문 제작자가 만든 옷도 포함돼 있다.

“우리는 3D프린터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요. 다년간 쌓지 않으면 안 되는 후공정이나 채색과 같은 과정들 말입니다. 실물과 똑같아야 하니까요.”

김태형 대표는 셰에라자드웍스의 3D프린팅 피규어 사업을 예술과 기술의 경계에 있다고 표현했다. 3D프린터가 만든 피규어를 다듬어 실제와 가까운 피규어로 만드는 것. 말하자면,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인 셈이다. 셰에라자드웍스는 피규어사업 이후 3D 모델 플랫폼을 사업으로 구상 중이다. 결국 남는 것은 콘텐츠라는 게 김태형 대표의 생각이다.

“3D프린팅 결과물로 사업을 연 곳 중에서는 우리 제품의 품질이 선두라고 생각해요. 디자인과 예술, 3D프린팅 기술을 담아 프리미엄 제품을 만드는 것이 셰에라자드웍스의 목표입니다.”

‘공방’에서 대여∙판매∙교육까지, 서교동 글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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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욱 글룩 대표(왼쪽), 송현성 이사

셰에라자드웍스의 피규어가 사실성을 강조한다면, 글룩의 무기는 귀여움이다. 작고, 귀여워 누구나 살 수 있는 그런 제품이 글룩의 무기다.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 자리를 잡은 글룩의 사무실. 여기저기 널린 각종 3D프린터를 보면, 정돈이 덜 된 공방을 보는 것 같다.

글룩은 2013년 겨울 홍대 앞에 터를 잡았다. 무대미술과 공연기획 등 예술관련 학과에서 수학하던 또래 대학생 넷이 뭉쳤다. 처음 마련한 사업 모델은 그야말로 ‘공방’. 졸업작품을 준비 중인 대학생부터 3D로 모델링한 시제품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픈 대기업의 부품 하청업체까지, 글룩은 3D프린팅 기술이 필요한 이들에게 장비과 자문을 제공하며 사업을 꾸려왔다. 어디서 알고 왔는지, 최근엔 졸업작품을 3D프린팅 기술과 엮으려는 대학생들의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송현성 글룩 이사는 말했다.

“디자인업체나 미대생에게서 특히 문의가 많이 왔어요. 출력소나 다름 없죠. 대학생의 작품이나 디자인업체의 목업 제품, 영화나 드라마 소품도 해봤고요. 한창 특허가 붐이었잖아요. 특허 출시 전 실제 기능을 보려는 이들도 찾아왔었어요.”

중국 게임 개발업체 추콩이 최근 국내 출시한 MMORPG ‘난릉왕’의 영상 광고를 본 적이 있는가. 광고 영상에 나오는 가면이 글룩에서 3D프린터로 뽑은 제품이다. SBS 프로그램 ‘런닝맨’의 ‘히어로특집’에서 출연자 ‘개리’가 쓰고 나온 ‘손오공 모자’도 글룩에서 제작했다.

게임 광고에 쓰인 글룩이 만든 가면

손오공 모자 제작기가 흥미롭다. ’런닝맨’ 촬영에 쓰인 모자는 안전모 위에 3D프린팅 결과물을 씌워 완성했다. 안전모와 같은 기존의 도구 없이 3D프린터만으로 만들면 실제로 머리에 쓰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당시 글룩의 판단이었다. ‘런닝맨’처럼 출연자들이 연신 달음박질치는 프로그램이라면 더욱 그렇다. 글룩의 ‘공방’ 경험이 최적의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었던 셈이다. 3D프린터를 써본 적 없는 이들에게 3D 디자인과 출력에 관한 조언을 하는 것이 글룩의 바탕이 됐다.

“대학생들이 시제품이나 졸업작품을 만들기 위해 의뢰를 할 때 크기와 출력 난이도가 높으면 가격이 올라가거든요. 100여만원을 호가하기도 하고요. 3D프린터를 접해보고 싶은데 출력 가격도 만만찮고 구입하긴 또 부담스럽고,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출력소 공방 다음으로 글룩이 세운 목표는 ‘렌탈샵’이다. 3D프린터로 자신이 모델링한 작품을 뽑으려는 이들, 경험해보고 싶은데 3D프린터를 구입하는 것은 망설이고 있는 이들이 대상이란다. 글룩이 직접 3D프린팅 작품도 판매할 예정이다. 홍대 ‘상상마당’과 얘기가 잘 풀렸다. 오는 여름께 글룩이 제작한 인테리어 소품이 상상마당 한켠에서 일반 사용자와 만날 예정이다.

“3D프린터는 도구죠. 어떤 분야에 접목시켜 쓸 것이냐가 중요한 거라고 봐요. 우리는 전공인 미술과 우선 접목한 거고요. 또 다른 기술도 계속 나올텐데, 그런 정보를 모아서 지금은 없는 방식의 예술품이나 미술품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맨손으로 일군 3D프린터 스타트업, 가산 S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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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철민 S3D 대표

3D프린팅 산업의 꽃은 콘텐츠다. 셰에라자드웍스와 글룩이 하는 일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3D프린터가 만들어내는 최종 결과물에 집중한다. 반대로, 3D프린터 자체에서 기회를 찾는 이들도 있다. 국내에서 3D프린터 기술의 기초를 닦는 이들이다. 친구의 사무실을 빌려 사업을 벌였다는 백철민 S3D 대표는 3D프린팅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기술을 연구하며 사업을 꾸리고 있다.

“각도에 굉장히 민감해요. 정삼각형 함수에 의해 정확히 30도를 유지해야 하거든요. 노즐이 위아래로 움직이면 안 되니까 수평을 잡는 것도 매우 중요하고요.”

백철민 대표가 연구 중인 3D프린터를 ‘델타방식’이라고 부른다. 마치 로봇 팔처럼 생긴 로더 3개로 이루어져 있다. 2개의 다리가 직각으로 연결돼 움직이는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은 ‘직교방식’이라고 부른다. 본체의 삼각 꼭짓점에 연결된 기둥과 로더가 이루는 각도는 정확히 30도. 로더가 움직일 때 노즐이 마치 바이킹처럼 위·아래로 움직이지 않도록 수평을 유지하는 것이 델타방식 3D프린터의 핵심이다.

델타방식 3D프린터는 직교방식과 비교해 수평 평면에서 움직임이 자유롭다. 덕분에 가로와 세로의 직선운동만으로 평면을 오가는 직교방식보다 출력 속도가 빠르다. 평면에서 움직임이 수월하기 때문에 원기둥 등 원형 제품을 출력하는데도 직교방식보다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각도를 맞추는 일, 로더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조정하는 일 등은 직교방식 3D프린터보다 까다롭다. 국내에서 델타방식 3D프린터를 잘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이때문이다. 백철민 대표는 오히려 새로운 방식이라는 점 때문에 델타방식 3D프린터 연구에 매달리게 됐다.

“친구 사무실에서 책상 하나 갖다놓고 제품을 만들다보니 꼭 필요한 것이 목업이더라고요. 자연스럽게 3D프린터를 알게 됐죠. 그때부터 전세계 3D프린터를 거의 다 공부한 것 같아요. 그런데 국내에는 직교방식은 너무 많거든요. 델타방식은 어려운데, 계속 배우면서 연구했죠.”

초기 버전부터 반응이 괜찮았다. 작은 업체다보니 마케팅은 언감생심. 그런데도 주문이 퍽 들어왔다. 소문 듣고 찾아온 이들이다. 주로 대학 등 교육기관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기둥 뼈대와 전체 성능을 개선한 두 번째 제품을 출시했고, 지금 S3D는 정낙명 설계팀장과 함께 조금 더 큰 크기의 델타방식 3D프린터를 연구 중이다.

“똑같은 컴퓨터를 갖고도 게임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게임을 만드는 사람도 있잖아요. 3D프린터를 갖게 됐다고 해서 아이디어가 샘솟는 것은 아니고, 응용 용도를 찾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3D프린터, 3D프린팅 시장은 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옛날 처음을 종이에 글자를 인쇄한 2D프린터처럼 말이죠.”